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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에 달린 ‘돼지 콧구멍’ 무슨용도 일까요?

하쿠나마타투 2024. 7. 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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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쉬 탭(lash tab)은 마름모로 된 패치에 돼지 콧구멍 모양으로 긴 구멍이 2개 나 있는 형태다. 가죽 소재가 많았지만 고무와 플라스틱 재질도 많이 쓴다. 일반적으로 배낭의 중앙 부분에 붙어 있는데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의문이다.

 

래쉬 탭은 ‘(밧줄로) 단단히 묶는다’의 래쉬(lash)와 식별표·꼬리표를 의미하는 탭(tab)을 합친 명칭으로 물건을 매다는 용도로 쓴다. 구멍 사이로 끈, 카라비너 등을 통과시켜 물건을 묶거나 매달 수 있다. 초기에는 등반가들이 얼음도끼(피켈)를 달고 다니기 위한 용도로, 쉽고 빠르게 접근해야 하는 장비를 매달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밧줄이나 침낭 등 부피가 커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 물건이나 비옷, 등산화처럼 다른 물건과 섞이면 곤란한 지저분한 물건들을 가방 밖에 매달 때 쓸 수 있다.

 

 

배낭 안에 넣을 수 없거나, 넣고 싶지 않은 물건은 래쉬 탭을 이용하면 쉽게 거치할 수 있다. [사진 출처=uniqueleatherbags.us]

 

등산용 배낭의 래쉬 탭이 학생용 책가방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캐나다의 가방 제작업체 허셜(Herschel supply Co.) 덕분이다. 허셜은 세련된 마름모 형태의 가죽 패치로 재해석한 래쉬 탭을 자사의 배낭에 부착하기 시작, 이후 잔스포츠(jansport) 등 다른 아웃도어 배낭 브랜드도 도입하면서 보편화됐다. 허셜의 래쉬 탭 사랑은 배낭은 물론이고 더플 가방, 크로스백, 심지어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트렁크 가방에까지 래쉬 탭을 붙여놨다. 브랜드 로고 수준이 되어 사람들은 허셜 브랜드는 몰라도 ‘마름모 돼지코’는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용도의 배낭이라면, 래쉬 탭은 장식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허셜 공동 창업자인 제이미 코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래쉬 탭은) 옛 등산용 배낭과 과거에 대한 경의”라며 실용성보다 상징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배낭을 사용했을까??

 

배낭(背囊, backpack)은 이름 그대로 물건을 넣어 등에 지고 다니는 주머니다. 배낭은 손이나 자루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짐을 효율적으로 옮길 수 있고, 무엇보다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점을 제공한다.

선조들이 선사 시대 때부터 가방을 만들어 사용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배낭 역시 상당히 이른 시점에 등장했으리라 추정하지만 구체적인 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가죽이나 식물 섬유를 재료로 삼은 배낭이 원형 대로 보존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확인 가능한 사료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낭은 기원전 3300년경 외치(Ötzi), 일명 ‘아이스맨’으로 불리는 미라의 배낭이다. 1991년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 사이 해발 3,200m 고도의 알프스산맥에서 발견된 남성 미라로, 약 5300년 전 청동기에 사망한 인물이다.

눈과 얼음, 빙하에 파묻혀 냉동된 덕에 시신뿐만 아니라 가죽옷과 나무 활·구리 손도끼 같은 소지품까지 온전하게 보될 수 있었고, 발견된 소지품 중 나무 배낭도 있었다. 현장에서는 U자 형태로 휘어있는 2m 길이의 개암나무 막대와 길이 38~40㎝의 좁은 낙엽송 나무판 두 개가 나왔는데, 학자들은 막대와 나무판을 끈으로 묶어 틀로 만든 뒤, 가죽 자루나 그물을 매달아 배낭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1991년 출토된 아이스맨 외치의 배낭 부속품(왼쪽)과 상상력을 발휘해 네티즌이 복원한 외치의 배낭(중앙·오른쪽). [사진 출처=www.iceman.it 이탈리아 남티롤 고고학 박물관 홈페이지, 독일 인터넷 커뮤니티]

 

우리나라 전통의 지게도 짐을 얹어서 지고 다니는 기구이다 보니, 엄밀히 말하자면 배낭은 아니지만 왠지 빠지면 섭섭하다. 1690년(숙종 16년)에 나온 역어유해(譯語類解)라는 책에서는 지게의 뜻을 풀어 배협자(背狹子)라고 적고 있다.

지게



1800년대 후반 노르웨이에 Sekk med meis(프레임·틀이 있는 가방)이 널리 보급되었고 1874년에는 미 육군 헨리 클레이 메리엄 대령이 외부 프레임 배낭 디자인 특허를 최초로 출원했다. 하중을 분산시켜 보병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는 야심 찬 발명이었지만 지독하게 불편한 탓에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다.

1938년에는 게리 커닝햄이 끈과 버클이 아닌 지퍼로 여닫을 수 있는 배낭을 만들어 게임의 판도를 바꿔버렸다. 이후 알루미늄 프레임, 허리 벨트, 패딩 어깨끈, 내부 프레임, 힙 벨트 등 신기술·신소재가 속속 도입되며 현대적인 등산용 배낭이 완성됐다.

 

1938년 지퍼 배낭을 개발해 업계를 뒤집어 놓은 게리 커닝햄(1922~2010)은 5000년 배낭사(史) 공백을 단박에 채울 기세로 혁신적인 발명을 이어간다. 그는 현대적인 디자인의 삼각형 카라비너(1947), 코드록(매듭 대신 끈을 당겨서 잠그는 장치 ‘그거’·1951), 에드먼드 힐러리가 에베레스트산을 최초로 등정하면서 사용한 텐트(1953), 유아용 캐리어(1959), 최초의 경량 다운 재킷(1960) 등을 내놓으며 아웃도어 장비의 진화를 이끈다.

지퍼 배낭 발명 30년이 지난 이후 세계 최초의 경량 나일론 티어드롭 배낭이  생겨나고  이후 모든 나일론 배낭, 일상용 경량 배낭의 시초가 된다. 

 

 

등산용 배낭이 학생용 책가방으로 보편화 된 것은 세계적 배낭 브랜드 잔스포츠 때문이다. 1967년 미국 시애틀에서 아웃도어 매니아 스킵 요웰, 엔지니어이자 스킵의 사촌 머레이 플리츠, 그리고 머레이의 여자친구 잔 루이스가 의기투합해 아웃도어 배낭 사업을 시작했고 잔스포츠의 이름은 여자친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사업 초창기엔 산악인을 위한 전문가 배낭에 초점을 맞췄지만, 캠핑·야외활동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시점에 게리 커닝햄의 나일론 배낭에서 영감을 얻은 경량 배낭 제품군 ‘데이팩’을 내놨다. 워싱턴대학 스포츠용품 매장에 깔린 가벼운 배낭에 매료된 학생들은 너도나도 최초의 책가방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배낭은 캠퍼스를 장악하게 된다.

잔스포츠의 주요 ‘책가방’ 제품군. 데이팩(daypack)이라고도 하는 이 배낭들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학생들의 기본템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출처=잔스포츠]

 

한때 시대를 풍미할 만큼 대유행했던 잔스포츠 배낭은

다양한 브랜드의 고급 소재와 디자인으로 넘쳐나는 현재에 떠밀려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한걸음씩 멀어져 가고 있다.